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1987)는 이탈리아 출신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연출의 1987년 영화로 청나라, 더 나아가 중국 역사상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의 유년 시절부터 신해혁명, 만주국의 꼭두각시 황제에서 문화 대혁명에 이르기까지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담담한 스토리 진행으로 자칫 심심한 영화로 비칠 수 있으나 관객의 눈을 빼앗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비주얼과 뛰어난 음악을 자랑하는 영화라 긴 러닝 타임이 아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특히 이례적인 중국 정부의 허락에 자금성 올 로케로 제작해 그 사실적인 규모와 미를 살려낼 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토리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면서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간의 국공 내전이 끝나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의 도시가 된 하얼빈 역에 1950년 어느 날 5년간에 걸친 소련의 억류에서 풀려나 송환된 중국인 전범 800여 명이 가득합니다. 그 가운데 한 남자가 자살을 시도하게 되고,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어린 날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리는 이 남자는 바로 청나라 최후의 황제였던 선통제 아이신교로 푸이였습니다.
1908년 광서제가 붕어하자 당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서태후가 푸이를 동치제와 광서제의 후계자로 지명하여 태어난 지 2년 10개월 만에 청나라 12대 황제 선통제로 즉위하였습니다. 겨우 세 살에 황위에 오른 푸이는 즉위 3년 만에 중국을 뒤흔든 신해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황제 칭호와 사유 재산만 인정받은 채 퇴위당합니다. 자금성에서 연금 생활을 하며 황후와 후궁을 맞이하게 되고, 영국인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신사상에 매료된 그는 서양으로의 유학이라는 꿈을 갖게 됩니다. 이 시기에 그는 황실 재산을 좀을 먹는 환관들을 축출하고 새로운 인물을 기용하는 등 나름대로 황궁 내의 개혁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1924년 군벌 풍옥상의 쿠데타로 그는 결국 자금성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청나라 황제의 칭호를 빼앗기게 됩니다. 만주사변 이후 만주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일본인들의 획책에 넘어간 푸이는 유학의 꿈을 접고 만주국 접정을 거쳐 1934년에 만주국 황제에 즉위하여 강덕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주국의 황제라는 칭호는 허울에 불과하였으며 실권은 일본인들이 쥐고 있었고 푸이의 우매함에 격분한 황후는 아편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나자 푸이는 일본으로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만주국에 이미 들어온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중국으로 넘겨집니다. 만주국 포로를 수감하는 형무소에서 사상교육을 받고 출소한 그는 평범한 정원사로 일상을 지내고, 마지막 자금성을 찾아가 과거를 회상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역사적 배경
푸이는 1906년 청나라 제11대 황제인 광서제의 동생 순친왕 재풍(載灃)과 서태후의 측근인 대학사 겸 군기대신 영록(榮祿)의 딸 유란의 아들로 순친왕부에서 태어났습니다.
1908년 11월 14일 광서제가 붕어하자 당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서태후가 푸이를 동치제와 광서제의 후계자로 지명하여 태어난 지 2년 10개월 만에 청나라 12대 황제 선통제로 즉위하게 됩니다. 아버지 순친왕이 아닌 어린 푸이가 즉위한 이유는, 당시 계승법상 황제는 하나의 항렬에 1명만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버지 순친왕은 형인 광서제와 같은 항렬이라서 황제가 될 수 없었고 당장 전대의 광서제부터가 본래는 동치제의 사촌동생이라서 황제가 될 수는 없었으나 광서제의 모친이 서태후의 여동생이라 혈연으로 가까웠기에 서태후가 억지로 옹립한 형태였습니다. 푸이의 즉위식은 1908년 12월 2일 베이징의 자금성 태화전에서 봉행되었습니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위안스카이가 푸이의 퇴위를 압박하자, 1912년 2월 12일 융유황태후가 선통제의 퇴위 조서를 반포하면서 불과 세 살에 즉위했던 푸이는 3년 만에 폐위되고 맙니다. 이후 민국과의 협정 내용대로 외국 황제의 예우를 받으며 궁전인 자금성 안에서 청나라 소조정의 황제로서 지냅니다.
1924년 9월, 2차 직봉전쟁 이후 푸이와 청황실은 자금성에서 쫓겨나게 되고 순왕부로 돌아가 기거하다가 1925년 2월 25일 텐진의 일본 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깁니다.
1928년 6월 8일, 국민당의 2차 북벌로 국민혁명군이 베이징을 점령, 이어 1928년 7월 3일부터 7월 11일까지 장쭝창의 부하 출신인 군벌 쑨뎬잉은 국민혁명군에게 투항한 직후 베이징 동쪽에 위치한 동릉을 대대적으로 도굴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국민당이 역대 조상을 욕보인 이 사건으로 푸이는 격노했고 이후 일본과 손잡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발생한 이후 만주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일본인들의 획책으로 만주에 괴뢰국을 세우기로 하고 선통제의 덕성을 시험하기 위해 먼저 집정에 취임시키자고 결정됨에 따라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의 집정(執政, 최고 통치자)이 되었다가 1934년부터 만주국의 황제가 되었으며 이는 철저한 일본 제국의 꼭두각시 역할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 소련이 만주국으로 진격하면서 붕괴된 만주국에서 푸이는 전쟁포로로 잡히게 되어 전범대우를 받습니다. 그는 모르카프카 수용소를 거쳐 하바롭스크의 수용소로 보내져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고 이후에 45 특수전범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1946년 8월 16일, 극동국제군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만주국 황제 때의 일을 증언한 후 그는 1950년에 중국으로 끌려갑니다. 바로 처형당할 거라 예상했지만, 중국 공산당은 체제 선전 겸 내부 안정을 위해 전범수용소에 수감하고 사회주의 재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한때나마 중국 공산당 지도부 전원을 신민으로 거느렸었던 푸이는 더할 나위 없는 선전감이기도 했고, 신정권의 포용력을 과시한다는 제스처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푸순 전범 교도소에서 10년 동안 지내다 마오쩌둥의 특별 사면령으로 출소했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시민이 되어 중국과학원 식물연구소 베이징 식물원에서 일하게 되었고 1966년 문화 대혁명 시절에 푸이는 암에 걸려 베이징 내의 북경 반제 병원에 입원하지만, 그는 이미 입원할 때부터 암이 말기로 진행된 상태로 투병 중인 1967년 10월 17일 새벽 2시 30분, 신장암과 심장병으로 사망합니다.
이렇게 그는 중국의 근현대를 살며 일생 동안 신해혁명, 군벌들의 전쟁, 국민혁명,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만주 전략 공세 작전,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까지 중국 근현대사의 굴곡이란 굴곡은 모두 다 겪으면서 살아 망국의 황제만 2번을 한, 20세기 중국에서도 손꼽히게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인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총평
"마지막 황제"는 영화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중국의 근대화와 황제 체제의 종말을 다룬 것으로 평론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역사적 작품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의 연기, 시각적 효과, 음악 등에 대해서도 매우 호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완성도 자체는 이견이 없는 명작이나 몇몇 비평가 사이에선 베르톨루치의 전작에서 보인 역사와 사회, 정치, 성에 대한 날 선 시선 대신 오리엔탈리즘이 대신했다고 비판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선통제의 삶을 동정하는 시선으로 그려내다 보니 너무 과한 미화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관객들은 "마지막 황제"를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했습니다. 이 영화는 중국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며, 푸이의 삶과 중국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습니다. 중국 내 더우반에서는 10점 만점에 9.3점을 기록, 압도적인 호평으로 중국 내에서 몇 안되게 인정하는 서양권 제작의 중국 배경 영화라는 반응입니다.
"마지막 황제"는 중국의 근대화와 황제 체제의 종말을 다룬 역사적인 작품으로서 그 가치가 큽니다. 이 영화는 중국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푸이의 삶과 혼란스러웠던 중국의 격동기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의 연출과 연기, 시각적 효과 등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으며 종합적으로 "마지막 황제"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작품으로 꼭 추천할 만합니다.
수상내역
1989년
4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작품상, 의상상, 분장상)
1988년
6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음악상, 음향믹싱상)
40회 미국 감독 조합상(감독상(영화부문))
4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작품상-드라마,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
13회 LA 비평가 협회상(촬영상, 음악상)
1회 유럽영화상(심사위원특별상)
1987년
52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촬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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